백년설은 1914년 1월 19일 태어나 1980년 12월 6일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본명은 이창민이다.
| 이름 | 백년설 |
|---|---|
| 본명 | 이창민 |
| 출생 | 1914년 1월 19일 |
| 사망 | 1980년 12월 6일 |
| 향년 | 66세 |
| 직업 | 트로트 가수 |
| 고향 | 경상북도 성주 |
| 학력 | 성주농업보습학교 |
| 데뷔 | 1938년 〈유랑극단〉 |
| 대표곡 |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유랑극단, 두견화 사랑 |
데뷔와 활동 이력
백년설은 본명 이창민으로, 1914년 1월 19일 태어나 1980년 12월 6일 세상을 떠났다. 1934년 가수로 첫 데뷔했고,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1939년까지 〈두견화 사랑〉과 〈마도로스 수기〉 등을 발표했으며, 1940년대에는 남자 가수로 활동했다.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해 회장을 맡았고, 1961년 한국연예협회 기획분과 위원장을 거쳐 1963년 은퇴했다.
대표곡과 음악 활동
백년설의 노래로는 〈유랑극단〉,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가 있다. 1940년 이후에는 〈나그네 설움〉과 〈번지없는 주막〉을 비롯해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포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을 불렀다. 1941년 지원병제가 시행된 뒤에는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 등 지원병 참전을 독려하는 노래도 불렀다.
방송·무대 활동
확정된 자료에는 백년설의 방송 출연에 관한 기록이 제시되지 않았다. 활동 이력으로는 가수 데뷔와 음반 취입, 대한가수협회와 한국연예협회에서 맡은 직책이 확인된다. 은퇴 후에는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고 국제 무역 관련 사업을 운영했으며, 1979년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했다. 그는 미국에서 1980년 별세했다.
백년설와 함께 보는 인물
백년설 관련 자주 묻는 질문
백년설은 언제 세상을 떠났나요?
백년설은 1980년 12월 6일 향년 66세로 별세했습니다. 1914년 1월 19일생입니다.
백년설 본명은 무엇인가요?
백년설의 본명은 이창민입니다.
프로필 사실은 공개 자료로 교차 확인했습니다. 참고: 한국어 위키백과 «백년설». 최근 활동은 트롯광장 보도에 근거합니다.
